지난 2월, 중국에서 개발한 신작 서브컬쳐 게임 <듀엣 나이트 어비스>가 성황리에 CBT를 마쳤다. 2023년 10월에 첫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하며 관심을 모았던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지난해 테크니컬 테스트와 TGS 2024를 거치며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해 왔다.
영상으로 먼저 정보를 접한 이들에게는 루트 슈터를 연상시키는 전투 방식이 인상깊게 남았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유저들 사이에서는 서브컬쳐 ‘워프레임’으로 많이 알려진 편이다. 실제로 워프레임에서 영향을 받은 점도 일부 있긴 하지만,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중심을 잡고 있는 장르는 루트 슈터가 아닌 핵앤슬래시 액션에 가까웠다.
▲ 건 슈팅이 강조된 첫 공식 트레일러
루트슈터로 오해할 만했다
게임을 관통하는 전반적인 문법은 여타 서브컬쳐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퀘스트·필드 탐색 등 플레이를 통한 콘텐츠 개방 ▲레벨업·돌파·스킬업·각성 등 별도의 재화를 요구하는 육성 구조 ▲육성 재화 수급 콘텐츠 ▲(무기 외)장비 파밍 콘텐츠 ▲캐릭터 뽑기와 무기 뽑기 등 서브컬쳐 게임을 플레이해본 유저라면 금새 파악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다.
중요한 건 그런 틀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나 확립했느냐는 점이다. 위로는 ‘원신’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원로를 꺾어야 하고, 아래로는 끊임없이 출시되는 신작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 현재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는 서브컬쳐 게임의 ‘장점’이 아닌 ‘기본’으로 자리했다. 이제는 그 이상의 장점을 얹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다.
이에 <듀엣 나이트 어비스>가 내린 선택은 ‘핵앤슬래시 액션’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근 서브컬쳐 시장에서 이 장르를 채택한 게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이야 인기가 한풀 꺾인 상황이지만, 과거 ‘디아블로’의 폭발적인 흥행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장르였던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 실제로는 핵앤슬래시 액션에 가깝다
의외로 최근에는 보기 드문 장르이기도 하다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전투는 현란한 외관과는 달리 상당히 캐주얼한 편이다. 별다른 조작 없이 공격 버튼을 연타하는 것만으로도 시원시원한 액션이 펼쳐진다. 화면 가득 적들이 몰려오고 이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쾌감은 ‘진삼국무쌍’ 시리즈를 비롯한 일명 ‘무쌍류’ 액션과 유사한 감각이다.
그런 만큼 기본적인 구조는 단순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공격 버튼만 연타해도 되는 수준이다. 덕분에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구조가 단순하다는 약점은 연출로 보완한다. 공격 한 번에 적들이 우수수 쓸려나가는 시원시원한 손맛이야말로 이 장르의 최대 강점이다. 눈으로 보이는 액션의 피드백이 크게 연출되니 플레이어가 느끼는 만족감도 덩달아 커진다.
▲ 몰려오는 적을 떼로 쓸어버리는 시원시원한 손맛이 특징
여기에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스파이럴 점프’라는 시스템을 통해 게임에 속도감을 더했다. 스파이럴 점프는 카메라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빠르게 돌진하는 이동기다. 자주 비교되는 ‘워프레임’에도 불릿 점프라는 유사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플레이 전반에 걸쳐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스파이럴 점프는 스태미나같은 제약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건 즉시 발동할 수 있다. 스파이럴 점프를 반복해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테크닉이다. 카메라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동하기에 수평 뿐만 아니라 수직 방향으로도 발동이 가능하다. 벽 점프와 이단 점프 등과 함께 활용하면 필드를 한층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투에서 활용도도 높다. 대부분의 액션을 캔슬하고 발동할 수 있는 데다, 스파이럴 점프 자체도 공중 공격 등으로 캔슬이 가능하다. 활용에 익숙해진 후에는 전투 도중의 모든 이동 행위를 스파이럴 점프로 대체할 수 있다. 스파이럴 점프에도 공격 효과가 있기에 전투의 흐름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셈이다.
▲ 기동력 뿐만 아니라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물론 스파이럴 점프만으로는 부족하다. 속도감이 더해진다 한들 큰 틀은 기존 핵앤슬래시 액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차별화를 위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핵앤슬래시 액션에 루트 슈터를 접목했다. 이 게임의 장르가 ‘루트슈터’로 오인당한 이유이자 ‘워프레임’과 비교당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원거리 공격은 화면 중앙의 크로스헤어로 사격을 가하는 보편적인 슈터류의 형태다. PC 조작 기준 마우스 좌클릭으로는 근접 공격, 우클릭으로는 원거리 공격이 발동한다. 무기를 교체하는 과정이 생략된 만큼 두 공격 수단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다. 화면 중앙에는 항상 조준점이 찍혀 있어 근접 공격 도중에 적을 조준하고 사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도 있다.
▲ 원거리 무기는 슈터류 게임 감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원거리 무기는 소총, 쌍권총, 샷건, 런처, 활 등 다양한 종류가 준비돼 있다. 더욱이 동일 카테고리의 총기라도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것들이 많아 실질적인 종류는 훨씬 많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같은 소총이라도 일반적인 소총, 적을 관통하는 칼날 소총, 근처의 적에게 옮겨가는 광선 소총 등으로 구분되는 식이다.
핵앤슬래시 액션과 루트슈터. 두 장르의 조합은 꽤 흥미로웠다. 플레이 감각이 정반대인 두 장르를 어떻게 하나로 엮어냈을까? 여기에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각각의 영역을 분리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원거리와 공중에서는 사격, 근거리와 지상에서는 근접 공격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조합을 억지로 섞는 대신 각각의 영역에서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 싱겁지만 합리적인 해답이다.
특히 사거리뿐만 아니라 지상과 공중으로도 영역을 나눴다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공중에서 원거리 공격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중력이 약해진 것처럼 하강 속도가 느려진다. 게다가 공중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꽤 독특한 감각이지만 그 덕분에 공중에서 원거리 공격을 활용하기가 한층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번거로운 점프 구간을 통째로 건너뛰거나, 넓은 낭떠러지를 비행하듯 넘어가는 식의 꼼수로도 써먹을 수 있다.
▲ 캐릭터가 공중에 떠 있을때 주로 활용하게 된다
다만,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슈팅 액션은 슈터류의 기본적인 형태만 옮겨오는 데 그쳤을 뿐, 아직은 거기서 연결되는 재미와 플레이 경험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시스템은 미흡하고, 슈팅 감각은 부실하고, 설상가상으로 게임에서 원거리 공격이 차지하는 비중마저 낮은 상황이다.
두 장르의 접목이라고는 하나 게임의 근간은 핵앤슬래시 액션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렇기에 루트 슈터 장르만큼의 깊이를 요구하긴 어렵다. 하지만 차별화랍시고 내세운 요소가 유명무실해서야 이야기가 안 된다. 보스 패턴 파훼를 위해 강제되는 상황을 제외하면, 원거리 공격을 배제하더라도 전투는 문제 없이 성립한다. 오히려 원거리 공격을 쓰지 않는 편이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 단순히 위력이 약한 것도 문제거니와 활용성 면에서 근접 공격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 실질적으로 보스 몬스터 패턴 파훼를 용도를 제외하면
원거리 공격은 그다지 쓸모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 보스전을 제외한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전투는 핵앤슬래시 액션 중에서도 무쌍류에 가깝다. 간단한 조작으로 다수의 적을 쓸어버리는 형태다. 이런 유형의 게임에서는 범위가 넓은 공격 수단이 선호되기 마련이다. 그래야 더 많은 적을 한 번에 타격할 수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사거리가 짧거나 범위가 좁은 공격 수단은 선호되지 않으며 적을 흩어버리는 공격은 아예 금기로 취급된다. 단순한 구조의 전투를 물량으로 보완하는 장르에서 흩어진 소수의 적을 일일이 쫓아다니는 건 전혀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 그나마 범위가 넓은 런처가 쓸만한데 적을 날려버린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전투는 자연히 근접 공격 위주가 된다. 원거리 공격은 위력이 약하고, 범위는 좁고, 탄약은 제한돼 있으며, 재장전이라는 단점까지 존재한다. 그나마 범위가 넓은 런처류는 그리 센 것도 아니면서 적을 사방으로 날려버리니 클리어 타임을 늘리는 역적이다. 원거리 무기의 최대 이점인 사거리도 스파이럴 점프를 이용한 빠른 접근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이러니 원거리 공격이 나설 자리가 있겠는가. 멀리서 깨작깨작 총을 쏠 바에는 접근해서 베어버리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원거리 공격의 성능만 높여서야 역으로 근접 공격이 죽어버릴 우려가 있다. 게임의 근간을 뒤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거리 공격의 필요성’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앞으로 <듀엣 나이트 어비스>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 깨작깨작 총을 쏘느니 스파이럴 점프로 날아가서 베어버리는게 훨씬 효율적이다
어쩌다 보니 좀 세게 꼬집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전제가 되는 핵앤슬래시 액션의 시원시원한 맛은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럴 점프에서 비롯되는 속도감과 입체적인 공간 활용은 아직은 투박하지만 나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미려한 캐릭터 일러스트, 일러스트와 큰 격차가 나지 않는 인게임 모델링, 무거운 세계관과 진중한 스토리라인, 세계관에 한층 무게를 실어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풍 BGM 등 플레이어가 활동하게 될 주요 무대는 짜임새 있게 갖춰진 상태다. 콘텐츠가 다소 부실하긴 하지만, 1차 CBT 단계에서 콘텐츠의 양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니 넘어가자.
그러나 앞서 말한 요소는 각 장르의 기본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역일 뿐이다. 시원시원한 손맛은 핵앤슬래시 액션이 가져야 할 당연한 미덕이며,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는 서브컬쳐 게임이 가져야 할 당연한 미덕이다. 지극히 기본에 충실하지만, 그저 기본에만 충실해서는 부족하다. 중요한 건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플러스알파다.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핵앤슬래시 액션과 루트슈터를 접목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 노력의 결실은 아직 요원하다. 하지만 이 게임이 ‘서브컬쳐 워프레임’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아갈 길은 험난할지언정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결실은 무척이나 달콤하리라 예상된다.
더욱이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이제 첫 CBT를 마쳤을 뿐이다. 나아갈 방향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시점이다. 이번 테스트로 수집된 피드백을 면밀히 살펴 한층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올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모습이 기대된다.
신수용 기자(ssy@smart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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